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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국, 김좌진 후손의 삶 회고…“독립유공자 후손들 먹고살기도 힘들었다” 발언 재조명

송일국, 김좌진 후손의 삶 회고…“독립유공자 후손들 먹고살기도 힘들었다” 발언 재조명
송일국, 김좌진 후손의 삶 회고…“독립유공자 후손들 먹고살기도 힘들었다” 발언 재조명

송일국이 지난 5월 방송에서 털어놓은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가족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친일파는 오히려 가정적” 발언은 송일국 개인의 역설적 표현…역사적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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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인 배우 송일국이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겪었던 현실을 이야기한 과거 발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최근 새롭게 나온 발언은 아니다. 송일국은 지난 5월 23일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 26회​에서 외증조부 김좌진 장군과 가족들의 삶,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책임감을 이야기했다. 해당 내용이 8월 들어 온라인과 언론을 통해 다시 확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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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국 “김좌진 장군, 집안 가장으로 보면 원수 같았을 수도”

송일국은 이날 김좌진 장군을 역사적 영웅이 아닌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봤다.

그는 김좌진 장군 집안이 홍성의 상당한 부호였지만, 김 장군이 자신의 재산을 교육과 독립운동 등에 사용하면서 남은 가족들은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 같은 설명은 관련 역사 자료에서도 상당 부분 확인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김좌진을 188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으며,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는 김좌진이 집안의 노비들을 해방하고 토지를 나눠준 뒤 1907년 고향에 호명학교를 세웠으며, 자신의 집을 학교 건물로 내놓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연합뉴스가 김좌진 관련 연구서를 소개한 기사에서도 그가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노비를 해방하고 토지를 나눈 데 이어, 99칸 규모 집을 학교로 활용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김좌진 사후 가족들이 장례를 치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는 기록도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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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들은 오히려 가정적이었다”…무슨 뜻이었나

가장 강하게 주목받은 것은 송일국의 이른바 ‘친일파는 오히려 가정적이었다’​는 발언이다.

송일국은 독립운동가들이 재산과 삶을 독립운동에 바치면서 후손들은 교육은커녕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던 반면, 반대편에 있던 사람들의 가족은 상대적으로 교육과 유학의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는 역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이어 독립유공자 후손들을 우리 사회가 더 잘 대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역사적 희생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친일파들은 가정적이었다”는 표현 자체를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이나 친일 인사 전체에 적용되는 특징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송일국이 독립운동가가 가족의 생계와 안정보다 국권 회복을 위해 재산과 삶을 희생한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개인적 발언이다. 개별 친일 인사와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사 역시 각각 달랐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일괄 일반화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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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정부도 ‘생활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 제도 운영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송일국 개인의 가족사에서만 등장한 문제는 아니다.

정부는 생활이 어려운 독립유공자 후손을 지원하기 위해 2018년부터 독립유공자 자녀·손자녀 생활지원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제도 도입 당시 기존 보상금을 받지 않는 독립유공자 자녀와 손자녀 가운데 소득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에게 생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설명했다.

2021년에는 국가보훈처가 독립유공자 후손 지원과 관련해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지원 강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송일국이 방송에서 언급한 ‘독립유공자 후손의 생활고’ 자체는 단순한 방송용 표현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다. 다만 모든 독립유공자 후손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의미 역시 아니므로 개별 사례와 제도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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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둥이에게도 “김좌진 장군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

송일국은 김좌진 장군의 후손으로 살아오면서 느끼는 부담감도 털어놨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에게 조상의 이름에 누를 끼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밝혔다.

자신 역시 아들 대한·민국·만세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송일국의 가족 관계를 보면 김좌진 장군은 송일국의 외증조부다. 김좌진의 아들인 김두한이 송일국의 외조부이고, 김두한의 딸인 김을동이 송일국의 어머니다. MBN 방송에서도 이 같은 가족 관계가 소개됐다.

송일국은 자신도 서른 살을 넘긴 뒤에야 조상의 의미와 후손으로서 책임감을 크게 느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 김을동이 주도한 청산리 역사 대장정에 오랫동안 참여한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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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한 장인의 묘비 앞에서도 느낀 ‘이름 없는 희생’

송일국은 결혼 후 장모와 함께 국립현충원을 방문했던 경험도 공개했다.

그는 장모가 한 작은 묘비 앞으로 자신을 데려가 6·25전쟁 때 전사한 장인의 묘라고 알려줬다고 회상했다.

이 경험을 통해 김좌진 장군처럼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영웅뿐 아니라 기록에서 크게 조명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역시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좌진 장군 역시 국가보훈부 자료에서 만주 지역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대표적 독립운동가로 평가된다. 북로군정서를 이끌고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했으며 이후 신민부와 한족총연합회 등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1930년 순국했다.

이번에 다시 확산된 송일국의 발언은 2026년 8월 새로 나온 발언이 아니라 지난 5월 23일 방송 내용이다.

또 ‘친일파가 가정적이었다’는 한 문장만 떼어 역사적 사실처럼 전달하기보다,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내놓은 이들의 가족이 감수해야 했던 희생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나온 송일국의 역설적 표현이라는 전체 맥락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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